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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를 위하여

by Mosaic Eva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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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별세에 대한 보도가 떴습니다. 2014년부터 암과의 사투를 벌여 오던 중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한 포스팅으로 고인에 대해 가장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하얀 백합 꽃다발이 피아노 건반 위에 놓여있는 사진
Pixabay - Drumband5

 

 

생애

1952년 출생한 사카모토 류이치는 출판사 편집자였던 아버지의 클래식 LP로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11살에 클래식 작곡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는 우연히 보게 된 포스트모던 연주회에서 충격적 경험을 한 이후 다양한 포스트 모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1971년 도쿄예술대 음악학부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전형적인 클래식뿐인 당시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피아노 아르바이트를 통해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솔로 앨범 작업 후 YMO의 멤버들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 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하게 됩니다. 이들이 연주하는 매우 진보적인 전자음악은 서구에서 큰 히트를 치게 되었고 따라서 일본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YMO활동은 음악뿐 아니라 영화 배우, 광고 모델로서까지 넓어졌습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공동주연으로 찍은 영화입니다. 또한 “마지막 황제”에서도 직접 극 중 인물을 연기하는 한편 OST를 통해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영화 OST작업과 함께 오케스트라 협업 등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첫 암투병 이후 2021년 두 번째 투병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2022년 자신의 시한부 삶을 인정하는 글을 통해 마지막 다짐을 남기며 그의 삶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2023년 3월 28일 향년 71세로 그의 삶을 마쳤습니다. 



음악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다"는 그의 신념대로 그의 음악은 3세에 시작한 클래식을 필두로 그 경계를 넓혀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들 속에는 일본 전통 요소와 최첨단 전자 기술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과의 협업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드뷔시와 바흐를 사랑했던 사카모토는 실제로 그의 기악곡 여러 곳에 바흐와 드뷔시의 음악적 구조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자 음악 그룹 YMO (Yellow Magic Orchestra)에서 그가 행했던 일련의 작업들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YMO에서 그의 다른 두 동료들과 함께 신디사이저를 대중음악에 접목시켰고 또한 일본 전통 악기뿐 아니라 서양의 팝과 록 역시 그의 음악에 포함하는 일을 해냈습니다. 이는 결국 YMO에게 커다란 성공과 함께 혁신적인 사운드는 그들이게 엄청난 인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하면 우리는 영화 "Merry Christmas Mr. Lawrence"(전장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에는 전자, 클래식 및스페이스바 한번; 일본 전통 음악의 요소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복잡한 편곡과 결코 쉽지 잊히지 않는 멜로디의 조화가 문화적 충돌과 정서적 혼란을 주제로하는 이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한마디로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그가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장르를 망라하는 음악적 능력을 통합한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사운드트랙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또한 영화 역시 걸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 운동

그는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아 환경보호와 사회 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사생활에 반해 인류 보편적인 생존 조건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비건으로서의 삶을 선택할 만큼 삶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의 인연

그가 자신의 음악에 전통적인 부분을 접목할 만큼 그는 다른 나라에 대한 전통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습니다. “남한산성”의 음악을 맡았을 뿐아니라 한국의 몇몇 국악 연주자들과도 깊은 교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작년 가수이자 작곡가인 류희열씨의 표절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카모토는 자신은 어떤 법적 조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는 말하며 “독창성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야 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한 인간이었지만 그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을 추구하는 ‘거장’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새로운 행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 죽더라도 후회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좀 더 남기고 싶어요."

사카모토 류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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